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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3)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만난 인상 깊었던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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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환의 레지던스 이야기

(13)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만난 인상 깊었던 작가들



작가 고등어의 작업실 전경


  연말연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어김없이 먼저 입주했던 작가들과 새롭게 선발된 작가들이 짐을 잔뜩 꾸려 입실과 퇴실준비로 분주하다. 필자도 사람인지라 입주기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정들었던 작가들이 제한된 입주기간이 끝나 새로운 작업실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날 때 마음이 참으로 헛헛하다. 물론 작가나 필자의 상호 활동범위가 같은 미술계에 속하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전시나 기타 행사를 통해 찾아보기는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을 회상하며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만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가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동안 필자는 작가를 외부에 소개할 때 전시, 프로젝트 등의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소개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할 작가들은 필자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며,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더더욱 아니며, 나아가 미술계가 집중 조명하는 소위 엄청나게 뜨고 있는 그런 작가들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 묵묵히 본연의 책임과 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정진하던 젊은 작가들이기에 또한 주변 환경에 의지하지 않는, 욕심 없는 작가들이기에 오히려 쉽게 작가의 스타일과 주된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작가군 이기에. 그리고 계속된 헛헛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고등어, 2010 오픈스튜디오 벽화 전경


2010에 다시 만난 고등어(본명은 ‘김다정’. 자신을 가꾸기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 이로 인한 ‘거식증’, 그리고 ‘고등어’<회화 및 설치>란 예명을 쓰다)
  엄밀히 따지면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나는 작가다> 전시에서 작품과 작가를 처음 접했다. 작가 스스로가 직접 자른 바가지 머리에, 원색의 옷을 여러 겹 레이어드한 패션이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더군다나 ‘고등어’라는, 작가 예명치고 이렇게 독특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기에 아니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랄까?  작품 또한 예명에 걸맞게 신선했다.

  먼저 그녀의 작품의 시작점인 ‘거식증’을 빼놓을 수 없다. 주변사람들과 세상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수단은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 먹고 토하기를 반복해 늘 그녀의 몸은 지독한 격전지가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난 왜 이 모양일까.”하며 자포자기에 빠진 어느 날, 친구로부터 ‘달빛 아래서 만찬’ 이란 책을 소개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조금씩 몸과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유독 현대 여성들이 왜 음식에 집착하는지, 이에 대한 사회심리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에 매료된 그녀는 하고 싶던 음악이나 글쓰기 그리고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본명이 아닌 예명을 사용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신을 ‘고등어’란 예명으로 소개하고 그림을 조금씩 그리기 시작한다. ‘먹을 것’이라는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또 다른 분출구가 필요했던 그녀에게 ‘그리기’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필연적인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작품을 소개하자면 고등어의 무대(화폭)에 항상 친절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크게 네 부류로 첫 번째 등장인물은 ‘파란양복의 남자’. 매번 주인공을 마다하지 않는다.(눈썰미 있는 분들이라면 쉽게 가늠할지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의 남아선호, 사회권력 등을 은유하며 다른 이에게 암묵적으로 침묵을 강요한다. 선과 악, 밝음과 어둠 등 모든 힘에는 균형이 있듯, 파란양복의 월권에 대항하는,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키는 ‘여신’(여성)이 필요할 때마다 등장한다. 작품마다 다양한 행위를 강요당하는 ‘미성숙한 소녀’들은 항상 표정 없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작가 자신을 의미하고 있으며, 자신과 비슷한 여성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매번 다양하게 바뀌는 무대에서 등장인물들의 연결을 도우는 도우미격인 ‘기타 등등’ 이 있다. 동물의 가죽과 같은 옷들, 남녀의 성기들, 실타래, 시계 등으로 등장인물들의 필연성과 개연성을 부추긴다.



고등어, ‘밤이 사라지고 달은 갇혀버렸다. 어둠만이 뛰노는 밤이다’, 2008


  주요작 <밤이 사라지고 달은 갇혀 버렸다. 어둠만이 뛰노는 밤이다. 2008>에서는 파란양복의 남자에 대한 사건이 종합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멀리 화폭 중앙의 시계가 저녁 8시가 조금 지나 가리키고 하루일과가 어느 특정사건과 함께 힘들게 지나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찬양(경고)하듯,  끊임없이 울어대는 뻐꾸기, 시계안팎을 드나들다 빠진 깃털들이 수북하게 쌓인 바닥 위, 최대권력자인 파란양복만 덩그러니 남고, 그 남자는 보이지 않게 된다. 무표정의 소녀들은 남자신체의 일부분을 마치 전리품인양 사이좋게 나눠서 박스에 넣어들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한편, 거울속의 남자는 힘을 잃은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런 광경을 작품중앙의 ‘언어의 숲’에서 마치 스크루지와 크리스마스 유령이 함께 과거와 미래를 보는 듯, 남자와 소녀가 그들의 미래를 함께 보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등장인물들과 다양한 배경들은 복잡 미묘하게 얽혀있어 이야기들을 구성한다. 그녀의 ‘그리기’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출발, 자신의 개인적인 영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감정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내고 기억과 경험, 믿음을 토대로 저마다 다른 감성언어가 통용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소명으로 작품 활동에 임하고 있다.



작가 이호진의 작업실 전경(2006년)


2006년이었던가, 유난히 사람들을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다.
  사람들을 좋아하다 보니 늘 모임에 참여했고, 자연스레 동료작가 전시 뒤풀이 등에 빠짐없이 어울리는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유난히 외향적인 활동에 비해 개인적인 고민이 많았으며, 이에 대한 독백을 하는 작가이기도 했다. 이호진(38 회화). 그와 전시를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커피한잔을 들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다보니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의 10수년전의 미국생활,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 등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작가의 모습에 영화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작가의 독백이 담긴 이호진 출연의 심야다큐 한편을 감상하고 나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요 작들을 살펴보면 이호진의 조형언어는 문자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 시각적인 것이며, 언어이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에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보이는 것이지만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로 불균형을 이루는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이 솔직 담백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속의 빈부격차, 물질 만능주의로 비롯되는 심리적인 압박 등의 뒤섞인 삶의 현상, 이렇듯 정신없는 세상을 작가는 경험에서 비롯된 외양의 재현 속에 특정사건을 내보이고 다소 감추는 듯한 묘사 등과 같이 일부분을 형상화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명쾌함이 두드러져 보이고,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의 한부분인 것이므로 보는 이에게 공감과 물음을 동시에 전달한다.



이호진, One Life Mater, 2006, 혼합매체, 251 x 216cm


  작가 자신의 삶이 평범한 순간들과 평범하지 않은 순간들 양쪽 모두에 순응하고 또는 부정함으로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삶속의 퍼즐’을 끼워 맞추듯, 낭만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 <Own Face>는 경험에 대한 물질적 기호로써 대상물들이 나타난다. 엎어진 술병,  중심에 위치한 얼굴, 총, 아파트형상의 건축물, 카지노의 칩 등은 작가의 육체적 경험을 통해 표현해 낼 수 있으며, 언제나 구체적인 그의 규칙 안에 존재하며,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업에 임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경험’이라는 비물질적 원료를 가공하는 일, 머릿속 혼란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일, 우연과 실체적인 것을 잘 분간 하는 일이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우연히 발생하는 것들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들로부터 그가 얼마나 솜씨 있게 내달려 왔는가를 볼 수 있다.



이호진, 2006, Own Face, 혼합매체, 210 x 240cm


  이러한 시지각적 내용들의 혼합방식은 보이는 장면에 따라 우리의 의식 속에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항상 같을 수도 있지만 매 시간 변하는 우리의 심리적 상태일 수도 있고,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현상들이 뒤얽혀 있는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삶에 취해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는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시각적 회오리 현상과 맞물려 삼차원적인 기억의 환상을 이차원적인 캔버스 위로 불러들여 주체할 수 없이 거칠고 넘칠 듯한 에너지의 흐름을 빗대어 스스로의 경험을 증명하듯이 작가 개인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일 것이고,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다시 한 번 그의 작품 앞을 서성거리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심규환 국립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매니저
2011. 1. 24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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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1/01/19 17:38:53 Posted at : 2011/01/19 17: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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