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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술가의 작가노트 (79) 사진작가 고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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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가노트

(79) ‘빈 공간’에 들어가기   



2015 북경, 중국 ⓒ고명근


  나는 또 중국의 허름한 뒷골목에 서 있었다. 마치 유령들처럼 이곳 사람들과 오토바이가 내 주위를 흘러지나가고, 나는 외딴 빈 골목에서 이름 모를 강아지와 순간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잠시 정신이 아득해질 때, 빈 무대 같은 골목 안을 메아리치는 내 카메라 셔터 소리에 ‘내가 사진을 찍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냄새나고 후미진 골목에서 마치 광활한 우주에 고요히 떠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런 곳을 헤매었으니 이제는 지칠 때도 되었건만 출사(出寫) 여행은 항상 새롭고 긴장된다.



1992 봉천동, 서울 ⓒ고명근


  개발과 발전에서 소외되었던 그 공간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겹겹으로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이다. 마치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처럼 태초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모두 함축해 가지고 있는 곳 같았다. 이러한 기묘한 느낌은 시간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고, 또한 진실에 대한 의문을 유도했다.



Building Studies-2, 1996, 139 x 32 x 28cm, photos/ wood/ plastic ⓒ고명근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실제(진실)는 현재뿐이라 한다. 그것을 일찍이 깨달은 부처는 ‘오직 순간만을 바라보라’ 즉, ‘순간만을 느끼고 살아라.’라는 실로 깊은 통찰의 금언을 남겼다. 그러면 우리가 가진 진실 된 현재는 얼마만큼의 시간일까? 나는 ‘인간의 인지 반응 시간’인 0.2초 정도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1/5초가 인간이 인지한 현재의 전부인 것이다. 사진은 이처럼 짧은 순간의 각각의 이미지 프레임을 바라보고 투사한다. 그리고 보고, 해석하고, 기억하는 메커니즘 때문에 사진은 가장 인간을 닮은 도구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러한 사진 같은 이미지들을 연결하여 우리는 현재라는 개념을 만들고 시간이라는 틀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파편적인 이미지 프레임들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시간이란 틀에 도배된 이미지들만이 세상의 진실이란 말인가? 나는 이러한 고민에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각각의 이미지들을 존재하게 만든 바탕이 무엇인가를 주목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만물 혹은 사건은 그 배후를 감추고 있기에 아름답고 완벽하다. 그리고 그 배후를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진실한 사유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슬라이드 필름의 구멍이 뚫린 검은 사각 바탕 같은 것!
광활한 우주에서 수많은 별과 은하를 품고 있으며 우주 탄생과 소멸의 비밀을 담고 있는 그 빈 공간!
부처가 호흡명상으로 얻었던 생각이 끊긴 그 평정의 공간!  

  이러한 신기루 같은 ‘빈 공간’을 획득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나의 이성과 논리의 무너짐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표피의 불합리와 부조리의 이미지가 걷혀지고, 그 내부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나타나기를 고대해왔다.  

 

Building with Trees-4,2011,  60 x 36 x 28cm, Digital film 3D-collage  ⓒ고명근

 Taipei10-4, 2011, 85 x 78 x 78cm, 
 Digital film 3D-collage  ⓒ고명근

 Chamber-8, 2012, 56 x 39 x 39cm, Digital film 3D-collage ⓒ고명근 
  

  그래서 무모하지만 나의 일련의 작업은 줄곧 그 빈 공간을 구현하려 했다. 따라서 이미지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을 만드는 입체구조를 고민하고 고집해왔다. 나는 사람들이 내 작업의 현란한 이미지 표피에만 시선을 멈추지 말고 그 내부의 ‘빈 공간’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Building-49, 2009, 30 x 56 x 25cm, Digital film 3D-collage  ⓒ고명근
 

사진작가 고명근
2015. 10. 26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고명근 프로필>
  고명근 작가는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 Pratt Institute에서 대학원과정을 졸업하였다. 작가는 1991년 뉴욕의 Higgins Hall Gallery에서의 첫 개인전 <Sculptured Photo-Collage>을 시작으로 지난 이십 년간 국내를 비롯한 미국, 일본 등에서 다수의 전시를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본래 국민대학교 예술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던 그는 2007년 이후 개인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교단을 떠났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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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5/10/22 12:15:08 Posted at : 2015/10/21 12: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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