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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큐레이터의 눈 (92) 김구림 - 김영성 그냥 지금 하자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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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눈

(92) <김구림 - 김영성 그냥 지금 하자> 展



김구림 작가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구림 작가(오른쪽)와 김영성 작가. ‘문명’과 ‘생명’이라는 공유 키워드를 통해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일관되게 풀어낸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 간의 40년이라는 물리적인 나이 차이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전위 예술의 선구자인 원로작가와 까마득한 후배 작가가 만났다. ‘그냥 지금 하자’ 展은 이미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 개념미술, 실험영화 등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김구림 작가와 초기 콜라주와 입체에 이어 극사실주의 회화를 구사하는 젊은 작가 김영성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펼쳐놓은 전시이다.  

  사실 이 전시는 으레 전시를 기획할 때처럼 어떠한 주제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작가를 스스로 찾아가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SNS를 통해 부관장님의 지인 작가인  김영성 작가가 김구림 작가와의 만남을 전했고, 두 작가의 우연한 만남과 인연을 예사롭지 않게 보던 부관장님의 열린 생각과 추진력으로 두 작가의 2인전을 이곳 OCI미술관에서 계획하게 되었다.



김구림, <음과 양 11-05.70>, 2011, 혼합 재료, 190 x 122 x 22cm


  사실 기획자로서 세대가 다른 두 작가의 작품들로 ‘비교’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않은 2인전을 만들어가는 일은 흥미로움과 동시에 솔직히 된장찌개의 재료로 스팸과 버터를 받은 것처럼 막연하기도 했다.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여하튼 세대와 매체, 표현 방법이 너무도 다른 두 작가를 어떻게 하나의 주제와 전시로 풀어갈 것인지가 도전이자 새로운 과제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전시이다.



OCI미술관 1층 전시 전경을 촬영하고 있는 김구림 작가


  전시의 제목이 된 ‘그냥 지금 하자’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우리의 까다로운 질문공세와 절차에 대한 두 작가의 쿨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김구림 작가의 ‘제자의 제자’인 김영성 작가는 한 만남의 자리에서 “언젠가 저도 선생님과 전시를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존경을 표했는데 김구림 작가는 “뭘 나중에 해, 그냥 지금 하자”라고 대가답게 여유로운 대답을 주었다고 한다. 이 두 작가가 뭉친 것은 학연이나 지연이 아닌 그렇다고 나이도 쌓아온 업적도 아닌 그저 예술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거침없는 작가정신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두 작가의 만남에서 나온 이 말은 실제로 전시의 동기(動機)이기도 할 뿐 아니라 이번 전시의 정체성과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되어 결국 제목으로 선택하였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서 ‘어떤 것이 현대미술인가?’ 에 대한 대답으로 어렵고 장황한 설명보다는 ‘어떠한 조건과도 타협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바로 지금 예술을 하는 행위’라고 대답함으로써 동시대미술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 더불어 전시를 보는 이들이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핑계 없이 현재를 직시하며 행동하자’라는 삶의 지침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사실 필자도 살면서 도전해야할 많은 것들을 두려움과 갖가지 핑계, 게으름 등으로 먼 미래로 미뤘던 일들이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에 이 문장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기획의 초반에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두 작가가 작품에서 ‘문명’과 ‘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는 점을 이번 전시의 중심된 주제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들은 다름과 차이 가운데에서도 공통적으로 물신(物神)주의, 획일적인 대중문화, 디지털화의 가속화 등을 낳은 현대사회의 물질문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 특히 두 작가 모두 한 작품 속에서 의미가 상충되거나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개념과 요소들을 결합하는데, 주로 훼손된 인간의 신체, 자연의 요소들과 기계 부품 등 문명의 산물들을 이질적으로 병치하여 문명으로 인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암시한다는 점이 두드러진 공통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오브제, 페인팅을 자유롭게 활용한 해체적인 콜라주와 입체, 설치의 방식을 활용한 두 작가의 작품을 흥미롭게 비교해보는 구성과 더불어 각 작가의 개성을 고려하여 공간을 독립적으로 안배하는 비중을 높였다. 각 층마다 ‘문명인을 위한 애도’, ‘사라진 자연에 관한 진술’, ‘가장 작은 이들과의 만남’이라는 소주제를 붙여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했다.



김구림, <음과 양 12-S. 37>, 2012, 혼합 재료, 91 x 132 x 60cm


  김구림 작가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전(全) 작업을 부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과 김영성 작가가 초기의 콜라주와 입체에 이어서 근작에서는 극사실회화 기법을 구사하여 뚜렷한 형식 변화가 있다는 점을 염두 했지만, 두 작가가 세대와 경험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문명’과 ‘생명’의 문제를 작품 속에서 꾸준하게 성찰한다는 점은 중요하게 짚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는 확신이 있었다. 

  작가에게 작품의 제목은 자신의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과도 같다고도 하는데, 두 작가는 어느 시점부터 작품에 일관된 제목을 붙여왔다. 김영성 작가의 경우에는 작업이라는 것을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 · 생 · 물(無 · 生 · 物)’ 이라는 하나의 제목을 고수해왔고, 김구림 작가의 경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음(陰)과 양(陽)’이라는 제목을 지켜왔다. 김구림 작가의 경우 ‘음과 양’이라는 사상을 구축하면서 모든 반대되는 개념들을 포용하는 우주적인 의미를 작품으로 구체화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념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김구림 작가의 작품에서 핵심적인 특징이다. 주로 김구림은 ‘음양’의 개념으로 격정의 현대사회를 표상해왔다. 

  이와 비교해볼 수 있는 김영성의 ‘무 · 생 · 물’ 개념은 보잘 것 없는 것, 생명 그리고 생명이 없는 인공물이 공존한다는 의미로,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문명 속 생명의 위기를 표상하는 것이다.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지녔다는 점, 문명과 생명이 뒤얽힌 현대사회를 통찰하는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양’과 ‘무 · 생 · 물’ 개념을 나란히 놓고 살펴보는 것이 이번 두 작가의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 김구림


  전시를 계획하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원로작가에 비하면 아직은 한참 젊은 기획자로서 김구림 작가와의 세대 간의 차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맞추어야 할까 하는 문제였다. 단순히 연령의 차이가 아니라, 풍부한 예술적 사유와 경험으로 한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온 김구림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과 젊은 김영성 작가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분석하는 지점에서 원로 작가에게 혹 누가 되거나 미숙한 판단은 하지 않을지를 생각했다.



김구림, <음과 양-무덤>, 2015, 혼합 재료, 400 x 400 x 257cm


  그러나 김구림 작가는 몇 번에 걸친 작가미팅에서 자신이 걸어온 작가로서의 길을 가감 없이 이야기 해 주었고, 작업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생각과 변화에 대해 언제나 오픈 마인드인 작가는 필자를 그저 시작점에 선 젊은 큐레이터로 대하기보다는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존중해주었기에 두 작가가 연결되는 지점 및 전시 제목 등 기획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망설임 없이 펼칠 수 있었다. 

  그가 첫 작가미팅에서 “나는 권위의식을 무척 싫어해”라고 손사래를 치던 것이 생각난다. 작가가 끊임없이 그 시대의 정신과 새로운 변화를 탐구해와서인지, 그와 대화를 하면서 전혀 세대 차이가 나거나 고루하다는 느낌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필자가 새로운 감각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김구림 작가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60년대 중후반부터 2015년 현재까지 거의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쉬지 않고 전시에 참여했다. 심지어 이미 확고하게 김구림이라는 이름을 미술사에 남긴 이후에도 종종 개인전에서는 동명이인인 김구림의 전시가 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작품들을 구현하기도 했다. 과거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고 변화를 두려워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시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김구림은 이미 이전에 머릿속으로 고안해놓은 신작을 이번 전시에서 제작하기로 했다. 보통 여든의 작가라면 과거의 작품들과 일관적인 패턴의 작품들을 제작하거나 구작을 선보이겠지만, 지금까지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신작에 관한 구상을 설명하는 김구림 작가는 생전 처음으로 전시를 해 보는 청년 신진작가처럼 열정으로 들떠있었다. 

  김구림 작가를 보면서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마치 첫 개인전을 준비하는 순수하고 어린 작가처럼 온 마음을 다해 새로운 작품에 정성을 쏟는 작가의 모습자체가 큐레이터로서 무엇보다 값진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나는 뭐든 스스로 해야 해”라고 말하며 조수가 한 명도 없는 작업실에서 여든의 나이로 그 많은 오브제들을 들고 나르는 모습과 완성된 작품을 무거운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직접 촬영하는 모습에서 작품에 대한 순수하고 깊은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 작품을 픽업하러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에 조차 김구림 작가는 이른 새벽부터 나와 또 언젠가의 전시를 위해 생전 처음 보는 신작들을 제작하고 있었던 장면이 참 인상 깊다. 

  김구림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대표작으로 제작한 <음과 양-무덤>(2015)은 에피소드가 많았다. 미술관 1층 안쪽의 전시 공간을 거의 꽉 채우는 지름 4m에 높이 250cm정도의 거대한 무덤을 제작하는 일이 이번 전시에서 김구림 작가의 작품 부분에서는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가장 먼저 큰 스티로폼 판을 계획된 크기의 조각으로 잘라내서 이글루 형태를 만들고 그 내부에 시체 형상의 조형물을 설치한 후 무덤의 표면에 인조잔디와 내비게이션을 설치하는 과정이었다. 무덤 안쪽에는 시체의 형상을 넣어 문명의 발달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해가며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삶을 죽음으로 빗대어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무덤의 제작과 기술적인 부분들은 작가의 계획과 구성에 맞추어서 젊은 청년 작가와 미술관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



김구림 작가의 <음과 양-무덤> 내부 사진

   
  8월의 가장 뜨거웠던 날들에 미술관 옥상에서 진행된 무덤 제작은 크고 작은 재료를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전시 오프닝을 얼마 안 남겨두고 타버린 수많은 전선들을 다시 설치하는 등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어서 “무덤 속 귀신이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가려나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했지만, 크고 작은 고비들을 넘기고 완성되었다. 특히 내비게이션의 전선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가 비좁고 어두컴컴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작업을 해야 했는데, 무덤 속 어둠과 공포(?)를 경험하는 과정도 현대미술 작품으로서 몸의 체험을 강조하는 이 작품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OCI미술관 옥상에서 진행된 김구림 작가의 <음과 양-무덤> 작품 제작 과정


  작품의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미술관에서 모든 과정이 이루어졌기에 한 점의 작품을 위해 설치작가들과 그 조력자들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몸으로 뛰며 준비하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볼 수 있는 기회였고, 창작의 고통과 산고를 왜 나란히 비교하는지를 실감하며 작가들에게 또 한 번의 존경을 표하는 경험이 되었다. <음과 양-무덤>은 미술관 1층에서 누군가의 무덤을 파헤쳐보는 듯 실감나게 문명 속 인간의 죽음을 대면하게 해준다. 

  김구림 작가는 이렇듯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문명과 생명의 문제들을 사유하는데 특히 버려진 오브제들을 중요하게 활용한다. 작가의 넓은 작업실 옆에는 작품의 중요한 재료로 쓰일 버려진 가구, 고철 등 수많은 오브제들이 쌓여있어서 마치 ‘고물상’을 방불케 할 정도였는데, 우리가 버린 이 문명의 산물들이 작가의 손에서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여 그 예술 작품이 다시 현대 문명사회의 단면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작품의 진정성을 확인 할 수 있다.



김구림, <음과 양 12-S.26>, 2015, 혼합 재료, 194 x 660 x 94cm


  전시 작품인 <음과 양 12-S.26>(2015)과 같은 작품에서 고철덩어리들과 전자 부속품들, 못 쓰는 장난감 등을 사용하여 문명 속에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표현하거나, <음과 양 12-S. 37>(2012)에서 버려진 TV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작가의 이름을 보기 전에는 김구림 작가의 작품들이 청년 작가의 것인 줄 아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든의 작가라는 것을 말하면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인다. 작가는 문명의 그림자들, 인간의 죽음, 망가져가는 자연 등 우리를 둘러싼 무겁고 어두운 세계에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 그의 손으로 그 세계를 마음껏 반죽하여 우리를 초대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무덤과 해골, 시체의 형상 등은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무서운 것들이지만 특유의 청년 같은 천진함과 유머러스함을 작품에 녹여내어 그의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강렬하면서도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솔직하고 유쾌한 이 예술가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치유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영성 작가


작은 것들을 보는 가장 따듯한 눈을 가진 작가 김영성

  물컹하고 축축한 배를 차가워 보이는 티스푼위에 올려놓은 달팽이, 작은 물 컵 안에서 더 작은 지느러미들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금붕어,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것 같은 청개구리는 김영성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주력하는 극사실회화 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들이다. 김영성은 개구리, 달팽이가 스푼위에 놓여있거나 곤충이 매우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크 천위에 자리하는 등의 다소 인위적인 장면들을 붓질하나 찾기 힘든 화면의 회화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라는 소재, 생생한 색감 등의 특징으로 인해 얼핏 보면 광고의 한 장면 같이 완벽하게 매끄럽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기에, 작가가 이 작품들을 통해 나타내려는 것은 특히 시각적 아름다움 또는 ‘사진처럼 그리는 기술’이 가장 우선되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치밀한 회화들은 단순한 ‘눈’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의 단계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다.



김영성, <無.生.物>, 2015, 캔버스에 유채, 117 x 73cm
 

   김영성은 작가로서 작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9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문명 사회속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탐구해왔다. 인간의 생명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소중함에 남달리 귀를 기울여 왔던 그는 문명으로 인한 인간의 죽음을 나타내는 강렬한 초기의 입체와 콜라주 작품에 이어 2000년대 이후부터는 극사실 회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극사실 회화를 제작하기 위해 작가가 아주 작은 생명체들을 직접 채집하고 기른다는 점이 놀라웠는데, 특히 달팽이나 개구리같은 생명체들은 쉽게 구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는 날 혼자 작업실 앞 강둑을 간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달팽이와 개구리를 찾아 나선다는 것에서 작품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피를 물감삼아 완성한 정면의 자화상으로 예술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낼 정도로 카리스마와 남성다운 면이 돋보이는 작가가 초등학교 앞에서 설렘으로 병아리를 고르는 작은 소년처럼 쭈그려 앉아 혼자 달팽이를 찾거나 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장면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작고 약한 것들에게 한없이 따듯하고 너그러운 김영성이라고 생각되었다. 작가는 이렇게 기르는 달팽이와 개구리들을 본인이 엄선해서 준비한 스푼 등 작은 기물 위에 놓고 이리저리 연출하여 가장 적절한 순간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 사진을 디지털프로그램으로 세밀하게 보정한 후 회화로 구현해낸다.



김영성, <자화상>, 1993, 종이에 피, 55 x 40cm


  숨조차 조심스럽게 고르며 붓질이 거의 남지 않는 회화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그저 사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넘어서는 극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조차 가볍게 여겨지는 점점 더 흉흉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아주 작은 생명체를 매우 크게 확대하고 마치 연극의 주인공처럼 조명하여 그들의 세포까지 꿰뚫을 것 같은 세밀함으로 캔버스에 담음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김영성, <無.生.物>, 2013, 캔버스에 유채, 194 x 130cm


  작고 보잘 것 없이 여겨지는 것들이 주인공이 되는 세계야 말로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작가가 만든 세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회화이지만 그 회화의 밑에는 작가가 직접 자신의 몸을 움직여 생명체를 채집하고 기르는 과정, 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기물을 결합하여 연출하는 연극적 순간들 그리고 이 연극을 촬영한 사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을 이루면서 우리가 이 작은 것들에게 집중하도록 만든다. 작가가 조명한 캔버스 속 주인공들은 누구보다 당당하고 아름답다. 실제로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지금까지는 몰랐던 작은 생명체들의 디테일한 형상과 오묘한 색채에 감탄하곤 한다.



김영성, <無.生.物>, 1996, 혼합 재료, 164 x 164cm


  김영성 작가를 보면서 약한 것들 혹은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안타까워할 줄 아는 마음과 작은 것들과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온 시각을 집중하는 태도야말로 동시대 예술가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아이’라는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르면서 종종 판매가 되거나 외부에 소장된 작품에 대해 ‘시집을 갔다’라고 표현했는데, 딸아이를 가진 부모처럼 불면 날아갈까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작품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혼신을 다해 작품에 집중하는 그의 강한 집중력과 작가 정신이 매우 인상 깊다.



김영성, <無.生.物>, 1995, 혼합 재료, 182 x 182cm


  이번 전시에서는 극사실 회화 뿐 아니라 김영성의 초기 콜라주와 입체 작품도 함께 구성했는데, 전시장에서 종종 김구림 작가의 작품이 아니냐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극사실 회화와는 상반되는 해체적인 형식의 작품들이다. 죽은 물고기나 사람의 시체 사진 위에 검은 폴리코트와 전자 부품 등의 오브제를 부착하거나 박제된 고양이와 문명의 산물들을 뒤엉켜 놓는 등 문명으로 인한 생명의 위기를 경고하는 의미의 작품들은 이렇게 작업의 초기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강렬한 콜라주와 입체작품들은 작가가 현대미술 작가로서 풍부하게 다양한 형식을 구사해낸다는 것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근작인 극사실 회화들이 단지 ‘예쁜’ 화면을 위해 수고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명 속 생명의 소중함에 관한 작가의 꾸준한 관심이 새로운 방법으로 심화되어 표현된 것임을 더욱 확실하게 나타내준다고 생각한다. 

  김영성 작가의 관심은 현재에는 ‘극사실 조각’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조각에 관심이 많았었고 초기 작업에서 대형 입체와 설치를 탐구했던 작가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구일 것이라 생각된다. 캔버스 안에서 우리와 눈을 맞출 정도로 몇 배나 커진 이들이 또 어떤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무척 기대가 된다. 작가는 지금도 작은 생명체들과 씨름 중이다. 엄청나게 예리한 그러나 누구보다 따듯한 작가의 눈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김영성, <無.生.物>, 1995, 혼합재료, 70 x 70 x 210cm


  김구림, 김영성 두 작가는 40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주제와 개념에 맞추어 같으면서도 또 다른 모습들로 이번 전시를 멋지게 준비했다. 두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명의 장치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생명력’의 위기를 성찰한다. 대선배 작가로서 김영성 작가의 작품에 대해 조언해 줄 것이 없냐는 기자분의 물음에 “예술은 자신이 판단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 김구림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전시 오프닝 작가 인사에서 “김구림 작가님 반이라도 따라가는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2인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겸손으로 응하던 김영성 작가의 멘트 또한 인상 깊다. 무엇이든 거침없고 솔직한 김구림 작가가 후배 작가의 작업 세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온전히 존중해주는 모습과 자신만의 강한 신념과 개성을 묵묵히 작품으로 풀어내면서도 동시에 대선배의 작가 정신에 우선적으로 존경을 표할 줄 아는 김영성 작가의 마음이 세대와 매체를 넘나드는 이 전시를 가능하게 한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특히 ‘고정관념’을 많이 버릴 수 있는 생각의 힘이 생겼다. 예술에 대한 굳은 신념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운 생각과 변화를 멈추지 않는 두 작가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두 작가의 작가정신처럼 도전을 위해 ‘지금’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김지예 OCI미술관 큐레이터
2015. 10. 12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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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5/10/08 11:43:10 Posted at : 2015/10/06 16: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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