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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큐레이터의 눈 (85) 수향산방 재개관전, '수화와 향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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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눈

(85) 수향산방 재개관전, <수화와 향안의 집>



근원 김용준, <수향산방 전경>, 1944, 수묵담채, 24 x 32cm, 환기미술관 소장


전시의 출발, 근원과 수화의 이야기


좋은 친구 수화에게 노시산방(老柿山房)을 맡긴 나는 그에게 화초들을 잘 가꾸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의정부에 새로 마련한 삼간두옥(三間斗屋)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한 채 있던 집마저 팔아먹고 이렇다는 직업도 없이…… 자고 먹고 하다 보니 기껏해야 고인(古人)의 글이나 뒤적거리는 것이 나의 일과일 수밖에 없었다. …… 한번은 노시산방의 새 주인 수화를 만났더니 그의 말이 ‘노시산방을 사만 원에 팔라는 작자가 생기고 보니’ 나에게 대해 ‘대단히 미안한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수화는 가끔 나에게 돈도 쓰라고 집어 주고 그가 사랑하는 좋은 골동품도 갖다 주고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옛날 시인 송씨의 집을 산 사람을 연상하게 되고, 옛날 세상에만 그러한 사람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이 각박한 세상에도 역시 그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 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오늘에도 가장 큰 보물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함을 느낀다. …… 순수하다는 것을 정신의 결합에서밖에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정신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종교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에서뿐이다. 수화는 예술에 사는 사람이다. 예술에 산다는 간판을 건 사람이 아니요, 예술을 먹고 예술을 입고 예술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사람이다. 노시산방이 지금쯤은 백만 원의 값이 갈는지도 모른다. 천만 원, 억만 원의 값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노시산방은 한 덩어리 환영에 불과하다. 노시산방이란 한 덩어리 환영을 인연삼아 까부라져 가는 예술심(藝術心)이 살아나고 거기에서 현대가 가질 수 없는 한 사람의 예술가를 얻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 근원 김용준, 육장후기(戮莊後記) 중

특정 장소에서 기억의 흔적읽기

  현대는 장소혁명의 시대이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그리고 글로벌리즘은 특정 장소의 성장과 팽창에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효율적이고 편리한 인간 삶을 위해 고안된 여러 장소는 과도한 확장과 개발로 인해 도시경관의 단절과 불연속성 그리고 장소의 타자화와 인간적 스케일과 기억이 결핍된 장소의 상실을 불러왔다. 이와 같은 장소성의 상실은 오늘날 경제체제의 세계화와 정보화, 다국적 기업 혹은 중앙 권력의 성장과 함께 더욱 촉진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적 관점에서 근원과 수화의 기억이 서린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물리적 해체와 복원이 아닌 기억을 통한 장소복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 장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경관과 소음, 냄새 그리고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서사와 같은 흔적들은 우리가 그 장소를 상기시키거나 방문하였을 때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렇게 재생되는 ‘장소기억’은 장소가 지닌 물질적 흔적을 매개로 개인적 기억(장소감)을 넘어 사회적 기억(장소성)으로  남을 만큼 강력하다. 그리고 ‘장소기억’이라는 표현이 환기시키듯, 장소와 기억은 각기 시공간의 구체적 재현을 전재하며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 

  환기미술관의 <수화와 향안의 집>은 한 장소에 대한 여러 사람의 기억이 상징화되어 장소성을 득했을 때, ‘장소기억’은 물질적 기반을 뛰어넘어 또 다른 장소로 그 의미가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수화와 향안의 집’은 1940년대 초, 성북동에 살던 근원 김용준과 수화 김환기로부터 시작되었고 오랜 기간 김환기의 가슴 속에서 구상되다가 1990년대 부암동에서 수화와 김향안의 이야기가 얻어져 2015년 환기미술관에서 다시 한 번 각색, 재생산되었다.

수향산방(樹鄕山房), 수화와 향안의 이야기



김환기, <수향산방> 구상 스케치, 1960년대, 종이에 수채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재미난 생각을 했다.
우리 집(서울 서교동) 공지에 4층 집을 짓고
두 층은 우리가 쓰고 두 층은 사설 미술관을 하자고.
음악 학생, 무명 음악가로 하여금 연주회도 하고
입장료 있는 개전도 하고,
그림엽서 출판도 하고……

- 김환기, 1965년 1월 17일 일기 中


  김환기는 1950년대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위의 내용은, 우선 작은 규모나마 자신이 살고 있던 집터에다 미술관을 세워보자는 바램을 구상해 본 것이다. 비록 김환기는 생전에 이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미술관에 관한 꿈은 김향안에 의해 실현되었다. 그 중 수향산방(樹鄕山房)은 김환기가 언젠가 세울 계획으로 손수 디자인한 도면을 직접적으로 살려 지은 집이다.



<수화와 향안의 집> 전시전경 ⓒ환기재단·환기미술관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설립자인 김향안은 1992년 종로구 부암동에 미술관을 열면서, 김환기가 남긴 화실 겸 생활공간도 옮겨야 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가 1997년에 이를 실현하였다. 이후 이 건물은 화실과 생전의 생활공간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기념관으로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수향(樹鄕)은 수화(樹話)와 향안(鄕岸)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수향산방이란 당호는 1944년 근원 선생이 그린 <수향산방전경(樹鄕山房全景)>에서 비롯되었다. 

  신혼의 김환기, 김향안 부부는 수석(水石)과 감나무가 둘러싸인 수향산방 뜰에서 자신들의 예술 여정을 시작하였다. 이후 수향이란 명칭은 1950년대 후반 경부터 가끔 등장하는데,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개인소장으로 하지 않고 수향미술관 소장으로 표기한데서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언젠가 미술관을 세울 때 수향미술관이라고 할 의중이었음을 헤아리게 한다.


노마드되는 기억과 지속가능한 장소성

수향산방은 50년 전의 꿈이다.
근원 선생이 노시산방을 물려주시면서 이름지어주신 우리들의 보금자리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아서 환기미술관이 세워지고 …중략…
여초 선생의 아름다운 현판과 더불어 수향산방이 재현된 것은 기쁜 일이다.
사람은 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는 것일까? 되 뇌이던 수화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 김향안, 1997년 10월 10일




전시장 입구 바깥에서 바라본 <수화와 향안의 집> 전시모습


  2007년 설립된 수향산방은 2014-2015년 겨울, 미술관 본관 및 별관 기획전시장과 더불어 어엿한 또 하나의 전시관이자 김환기와 김향안을 위한 기념관으로 재개관되었다. 김환기와 김향안이 최초에 꿈꾸던 미술관은 예술 여정의 출발지였던 성북동이었지만 1980년대 말 김향안이 다시 찾았던 성북동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독특했던 장소성을 잃어 버린지 오래였다. 하지만 김환기와 김향안은 서울과 파리, 뉴욕과 같은 여러 장소에 기거하는 와중에도 수향산방에 대한 기억을 놓지 않고 살을 붙여 왔다. 수향산방이라는 그들의 기억 흔적,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를 따라 노마드되었던 이 기억은 결국 성북동 수향산방이라는 물리적 위치와 경관을 넘어서는 ‘장소기억’으로 환원되었을 것이다.



<수화와 향안의 집> 전시장에 재현한 김환기의 아뜰리애 ⓒ환기재단·환기미술관


  바슐라르(Bachelard)는 기억과 추억이 상실된 뿌리 뽑힌 불완전한 거소는 상자나 구멍일 뿐 집이 아니라고 하였다. 수화와 향안의 집, 수향산방이 하나의 환영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 현존할 수 있는 이유는 기억과 추억의 흔적을 더욱 공고히 하여 하나의 상징이자 당위로 도달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장소에 남겨진 흔적은 과거의 기억을 찾는 단서이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수향산방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흔적처럼 남은 기억이 시대와 공간을 가로질러 여기에 당도해 있기 때문이다. 

채영 환기미술관 학예사
2015. 3. 9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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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5/03/05 15:25:07 Posted at : 2015/03/03 17: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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