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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큐레이터의 눈 (80) Muntadas: Asian Protoc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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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눈

(80) Muntadas: Asian Protocols


  2014년 8월25일. ‘드디어, 결국, 마침내’ 토탈미술관에서 문타다스의 개인전 <문타다스: 아시안 프로토콜 Muntadas: Asian Protocols>가 열렸다. 전시를 본 관객들은 방대한 자료와 내용에 압도되어 물었다. 준비하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이 단순한 질문에 답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있었던 <문타다스: 프로토콜 Muntadas: Protocol>이라는 전시를 보고 싶어 안 되는 일정을 쪼개고 쪼개 2박3일의 일정으로 무작정 독일로 날아가 ‘저 문타다스 작가님과 전시하고 싶습니다.’라는 당돌한 말을 던졌던 것이 2006년이니까, 그때부터 친다면 8년을 준비한 전시였고, 2010년 MIT학생들과 <공적공간에 대한 대화들 Dialogs on Public Space>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방문한 후 ‘아시안 프롵토콜Asian Protocol’이라는 구상을 시작한 날로부터 본다면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전시였다.

  그 사이 문타다스는 전 세계를 돌며 큼직큼직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벨라스케스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문타다스의 행적을 따라가면 갈수록, 이토록 유명한 작가가 과연 예산도 인력도 부족한 우리와 개인전을 해 줄 것인지, 아니 해낼 수는 있을는지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 했던 문타다스는 약속을 지켰고, 큐레이터 경력 18년 차에 다시 인턴이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미친 듯이 달려왔던 20여 일간의 설치 끝에 오프닝 날 문타다스와 웃으며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작가와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또 다시 가져볼 수 있을까.
 
  이미 독일에서 문타다스의 <프로토콜> 전시를 본 적이 있었지만, 문타다스가 한국, 중국, 일본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아시안 프로토콜’에 관한 전시를 토탈미술관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적지 않게 당황했고, 조금은 실망했었다. 건축과 설치, 리서치와 미디어를 넘나드는 초기 작업부터 스펙터클한 전시를 한 번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과 현실의 거리는 컸다.



Muntadas, Asian Protocols Cartographies


  마드리드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나 파리의 쥬드 뽐므에서 했던 대규모 회고전인 <입구/사이 Entre/Between> 전시는 예산이나 공간, 혹은 작가의 명성에 비한다면 당연 국립현대미술관급에서나 가능한 전시임을 잘 알면서도 그래도 막상 그 전시가 아닌 새로운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아쉬웠다. 

  결국,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시안 프로토콜’이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뭔가 불분명한 불안감과 당혹스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작가의 명성과 역량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도 인정했듯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어느 하나도 모르는 유럽인이 과연 이 복잡하고 미묘한 삼국의 이야기를 이미지 독해로 풀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작가의 문제라기보다 그 어느 프로젝트보다 큐레이터의 조율과 지원이 절실한 이런 프로젝트를 하기에 과연 나는 한국, 중국, 일본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큐레이터는 맞는지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4명의 미술관 직원과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과연 이 전시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보여 질지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Muntadas, Asian Protocols On Translation Go Round


  <문타다스: 아시안 프로토콜>은 프로젝트 기반의 전시를 만들 때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며, 작가와 기획자와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절감하게 하는 프로젝트였다. 전시 임박 몇 달 전부터 한국시간으로 매주 토요일 9시 반. 문타다스와의 스카이프 미팅이 있었다. 리서치 진행 상황은 어떤지, 필요인력은 제대로 구해지고 있는지 등등. 마치 숙제검사 맞는 학생처럼 체크리스트 항목들을 하나하나 체크해갔다. 이런 협업의 방식은 한국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여일 전에 입국하여, 매일 공간과 일정을 확인했다. 문타다스는 아침 10시 반 쯤 출근해서, 저녁 8시경쯤 함께 퇴근하기를 20여일. 그냥 시켜놓고 나가 전시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도 될 것 같았는데, 오픈 날까지 문타다스는 마치 직원처럼 설치의 전(全) 과정을 함께했다. 아마도 그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긴장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는 다른 대안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토탈미술관이라는 공간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1975년 전시포스터에서부터 최근 개인전 도록까지 입구 벽면에 설치된 작가의 전시포스터와 도록은 문타다스라는 작가를 효과적으로 소개해 준다.



Muntadas, Asian Protocols Posters


  포스터들에서 시선을 돌려 첫 번째 전시장 <블랙보드 다이얼로그: 아시안 프로토콜에 대한 재정의> 섹션에 들어서면 관객은 전시장을 가득 메운 칠판과 그 위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쓰인 텍스트들을 마주한다. 전시장에 빼곡하게 쓰여 진 텍스트들은 한/중/일 아시아 삼국을 둘러본 문타다스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Muntadas, Asian Protocols Blackboard Dialog


  문타다스가 가족구성에서부터 성형수술, 검열, 독도나 위안부에 대한 문제까지 ‘Family?’, ‘Censorship?’ 이렇게 간단한 영어와 물음표 형식으로 질문을 하면, 정치학을 전공한 (한국) 리서처가 질문에 대한 한국, 중국, 일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하고, 그 답을 다시 일본사람과 중국사람이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하여 칠판에 썼다. 한국은 파란색 분필, 중국은 빨간색 분필, 그리고 일본은 노란색 분필로 빼곡히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이야기로 공간이 채워졌다. 텍스트가 너무 많아 관객을 질리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는 기우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칠판과 분필글씨에 신선함을 느껴서 인지, 오랜만에 만난 손 글씨에 대한 반가움이었는지, 관객들은 의외로 꼼꼼히 질문과 답을 읽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Asian Protocols Blackboard Dialog(Detail)


  텍스트와 이미지가 가득했던 1층 전시장에서 중층으로 내려가면, 아주 심플한, <번역에 관하여 On Translation> 시리즈에 속한 세 개의 영상 작품이 소개된다.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촬영한 영상작업 속에 나타나는 공간은 모호하여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화면 속 디테일을 통해서 한국, 중국, 일본일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공간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작동하는 독특한 방식에 대해 암시하는데, 이는 이어지는 <공적/사적 공간: 서울, 베이징, 토코 Public/Private Space: Seoul, Beijing, Tokyo> 리서치 스페이스에 대한 훌륭한 서언(序言)으로 기능한다.



Muntadas, Asian Protocols On Translation On View, Listening


한국의 도시연구자그룹, 일본과 중국의 건축가(팀)이 리서치한 서울, 베이징, 도쿄에서의 ‘공적/사적 공간’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으로, 건축학적으로 그리고 도시계획 상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3국에서 펼쳐지는 ‘공적/사적’ 공간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유사하고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준다.



Muntadas, Asian Protocols Public, Private Space(Seoul, Beijing, Tokyo)

 
  이렇게 <공적/사적 공간>의 섹션을 지나 지하로 들어서면 이번 <문타다스: 아시안 프로토콜>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아시안 프로토콜: 프로토콜 키워드&이미지 지도 Asian Protocols: Cartographies>, <아시안 프로토콜: 단편 Asian Protocol: Fragments>, 그리고 <번역에 관하여: 알약 On Translation: Pille>을 만나게 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각각 리서치 그룹이 만들어졌고, 문타다스는 각 리서치 그룹에 43개의 영문 키워드를 제시했다. 각 리서치 그룹은 영문 키워드를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번역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 다이어그램에 배치시켰다.



Muntadas, Asian Protocols Pille
  

  이외에도 문타다스가 러시아에서 찾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낱말카드, 여행 중에 발견한 한/중/일 자료들이 <아시안 프로토콜: 단편>의 비트린에 전시되었다. 그리고 마치 에필로그처럼 43개의 키워드가 영어/한국어/중국어/일본어로 쓰여 진 레이블을 단 43개의 시약병 <번역에 관하여: 알약>이 설치되었다. 플라시보 효과처럼, 43개의 키워드에 해당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문제를 풀리게 해줄 그런 알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시는 그렇게 끝이 난다.



Muntadas, Asian Protocols Vitrine Fragments

 
  전시를 만들면서 돌이켜 보니 한 번도 한/중/일 세 나라를 함께 비교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가졌고, 위안부 문제나 독도 등 여전히 풀지 못한 매듭을 가진 관계이기도 하지만, 또 경제적으로 서로를 외면할 수 없는 복잡한 이 세 나라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과연 관객은 스페인작가가 던진 이 질문들과 이미지 코스몰로지 안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전시를 오픈하고 나서도 여전히 많은 질문이 남았다. 어차피 예술은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나처럼 많은 질문을 하는 그의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꽤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에게 이번 전시가 한국과 중국, 일본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던지는 것이었다면, 큐레이터에게 이번 전시는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섹션에서 다른 섹션으로 어떻게 이음새를 꾸릴 것인지, 어떻게 공간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적절한 작품을 안배해야 하는지에 대한 학습의 시간이기도 했다. 전시를 꾸리던 거의 모든 과정에 문타다스가 함께 했다. 그 시간 안에서 문타다스는 작품 레이블을 만들고, 보도자료의 오탈자까지 꼼꼼하게 같이 확인했고, 점심시간 후에는 시에스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술관 한 켠에서 낮잠을 잔 다음에는 행복한 얼굴로 노래하며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 이름은 외우기 어렵다며, 직원들에게 (친히)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던 문타다스는 큰 작가임에도 여전히 세심하고 꼼꼼하며, 참 따뜻한 작가였다. 여전히 경험이 많이 부족한 어린 큐레이터들을 찬찬히 가르쳐주고, 고생했던 인턴들이 행여 크레딧에서 누락되었을까봐 챙기는 모습은 영락없이 제자를 아끼는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비록 설치과정에서 벌어졌던 세세한 부딪힘으로 인해, 함께 웃으면서 찍은 사진하나 없지만, 지금도 도록 제작 관련으로 시간만 나면 메일과 스카이프 미팅으로 재촉하지만, 함께 할 수 있던 것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볼수록 자꾸 새로운 것이 보여 지는 흥미 있는 전시 <문타다스: 아시안 프로토콜>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2014. 10. 13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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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4/10/08 14:28:15 Posted at : 2014/10/07 17: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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