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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 문화경쟁력 확보를 위한 건강한 투자, 런던의 활발한 작업실 임대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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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인의 영국현대미술기행


(8) 문화경쟁력 확보를 위한 건강한 투자,
런던의 활발한 작업실 임대시스템


  영국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작가들의 작업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운 좋게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런던의 거리 곳곳에 위치한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를 얻은 필자에게는 동 시대 작가들의 작업실 탐방이 어느새 이 곳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삶의 활력이 되었다. 물감냄새, 갖가지 도구와 재료들로 어지러운 작업대, 작품완성을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메모와 드로잉들로 가득한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그들의 삶과 개개인의 경험, 감각적 필터를 거쳐 탄생한 작품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시간가는 줄 몰랐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창작의 보금자리이자 심리적 안식처로서 자리한 작가들의 작업실. 오늘은 런던 곳곳에 위치한 동 시대 작가들의 작업실을 다니면서 알게 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흔히 작가들의 작업실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개인 소유의 작업실을 떠올릴 수 있지만, 사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막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개인 소유의 작업실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계에 입문한 젊은 작가들에게는 작업실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미술계 관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서 국내의 사립미술관이나 국공립미술관, 지역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 백 명의 미술전공 학생들이 해마다 작가의 꿈을 품고 교육기관에서 배출되는 상황과 실질적으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미술기관의 수, 그 안에서 선정되는 작가들의 수를 비교해보면, 작가들의 물리적인 창작환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운영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경우, 일반적으로 프로그램 참여를 희망하는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접수하여 일련의 심사과정을 거쳐 당해 연도의 참여 작가를 결정한다. 채택되지 않은 작가의 수가 헤아릴 수 없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채택된 작가들이라고 하더라고 보통 3개월, 6개월의 단기 레지던스 프로그램 혹은 1년, 2년의 장기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거치면 또 다시 다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과정을 반복하거나 개인 작업실을 힘겹게 알아봐야 하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예술가들을 위해 창작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예술가의 작품창작과 예술적 실험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물리적인 창작공간이 도시 공간의 한 일부로 자리함으로써, 작가들과 미술계관계자들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지역사회의 부족한 문화콘텐츠에 갈증을 느꼈던 감상자가 그러한 콘텐츠를 건강하게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 것일까?

  지역을 불문하고,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구한다는 것은 개인이 사는 집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환경이나 입지조건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작가들의 작업실 임대정보는 대개 동료작가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해지거나 소수의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사진과 연락처를 통해 거래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통해 자신이 찾아 헤매던 작업실을 구한다면 다행이지만, 기간과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동료작가들의 작업실을 나눠 쓰거나, 단기간  빌려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큐레이터라는 직업상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할 때마다 의례적으로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작업실을 구했느냐’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임대현실의 어려움과 작업실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 물음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이곳에서 접하게 된 흥미로운 정보 중의 하나는 런던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작업실을 장기간 대여할 수 있게 마련된 영국의 작업실 임대 시스템이다. 물론 ‘비교적 저렴하다’는 의미는 런던 시내에서 거주하는 비용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작업실 임차정보를 데이터베이스의 허브처럼 한 곳에 모아서 작업실을 구하는 작가들에게 제공하는 정보화 시스템이다.

  런던은 작가의 스튜디오 임대를 관리하는 것이 하나의 부동산 비즈니스로 인식될 정도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특히 전후(戰後)도시에서 산업사회의 폐허로 인식되어버린 공장건물이나 기능을 상실한 수력발전소, 런던 템스 강변을 따라 위치한 옛 해상화물 창고를 매입하여 작업실 환경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시설만을 갖춰 작가들에게 저렴한 임차료에 대여하는 시스템이다. 런던의 대표적인 작업실 임대기관으로는 설립연도 순으로 SPACE(Space, Provision, Artists, Cultural and Educational) Studios Ltd, ACME Studios, ACAVA(Association for Cultural Advancement through Visual Art), ASC(Artists' Studio Company) 등이 있다.


SPACE Studios Ltd, ACME Studios, ACAVA, ASC의 웹페이지.
*자료출처: http://www.spacestudios.org.uk/



  1968년 작가 Bridget Riley, Peter Sedgley, Peter Townsend에 의해 설립된 SPACE Studios Ltd.는 런던에 거주하고 있던 작가들의 작업실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안적 성격의 작업공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영국 최대의 작업실 임대기관이다. 템스강변에 위치한 St. Katharine 부둣가에 자리한 옛 창고건물을 작가들의 작업실로 개조하여 시작한 이 사업은 현재 런던시내에 18개의 건물을 매입하여 500개 이상의 작가들의 작업실 임대를 관리하고 있으며, 개인작가에서 그룹으로 활동하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대략 600여명의 작가들이 SPACE Studios에서 운영되는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다.

  1968년에 시작했다는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곳의 작업실 지원프로그램을 거쳐 간 작가들로는 TATE, Serpentine Gallery의 주요 전시나 트라팔가 광장의 Fourth Plinth 공공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Yinka Shonibare, Mark Wallinger, Rebecca Warren 등이 있다. 눈여겨볼  점은 이러한 기관이 몇몇 개인의 아이디어로 출발했으나, 건물매입과 운영의 측면에서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아래 사업을 확장하고, 후원을 얻어나가면서 운영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해나갔다는 점이다. 도시발전의 측면에 있어서도 40여 년 전에 SPACE Ltd.가 보여준 움직임은 이후 런던의 ACME Studios와 뉴욕의 PS1, 스코틀랜드의 WASPS 그리고 베를린의 Kunstlerhaus Bethanien에 영감을 준 모델로서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SPACE Studios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요약 정리하여, 공간의 설립취지와 운영에 관련된 정부부처와의 협력관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간략하게 알 수 있다.
* 자료출처: http://www.spacestudios.org.uk/



 

SPACE Ltd.의 설립취지와 역사를 알 수 있는 20여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필름 <Early SPACE>. 1972년 작(作).
* 자료출처:
http://www.spacestudios.org.uk/


  런던의 ACME Studios는 1972년 Acme Housing Association Ltd.의 Jonathan Harvey와 David Panton에 의해 설립된 작업실 임대회사이다. 단순히 작가의 작업실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별도의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과 참여를 기반으로 한 지역민들과의 교류프로그램, 해마다 입주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1년 작업실 무상임대와 소정의 기금(임대와 기금을 합하여 10,000파운드 상당의 지원금)을 수여하는 Jessica Wilkes Award 등을 진행하고 있다. SPACE Studios처럼 ACME Studios는 런던 곳곳에 총 12개의 건물을 예술가 작업실로 임대하고 있으며, 총 425개의 스튜디오에서 약 500여명의 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1985년에 설립된 ACAVA는 작가들의 창작환경발전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총 22개의 건물을 운영하고 있으며 300여개가 넘는 스튜디오에 약 500명의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ASC는 다른 작업실 임대 에이전시에 비해 비교적 최근인 1995년에 설립된 곳으로, 오픈 이래 현재까지 총 11개의 사이트에 걸쳐 약 700여명의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제공하고 있다.



각각의 작업실 임대 에이전시 홈페이지에는 런던 전역에 위치한 작업실 임대가능정보가 지도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
*자료출처: http://www.spacestudios.org.uk, http://www.acme.org.uk,
http://www.acava.org, http://www.ascstudios.co.uk




  이와 같은 작업실 임대기관들은 개개인의 국적에 상관없이 작가들의 이용목적에 맞게 작업실의 규모와 지원시설, 하루 단기 임차에서 5년 장기 임차에 이르기까지 사이트에 등록한 작가들의 구미에 맞는 다양한 작업실 임대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입주 작가들은 기간이 만료되면 재계약을 통해 임대시기를 연장할 수 있다. 별도의 심사나 공모절차 없이 지원을 희망하는 작가들은 해당 사이트에 등록 후 이용 가능한 지역에 속해있는 작업실을 운영기관 측에 문의, 예약해 놓으면 담당자가 입주 가능한 작업실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준다. 작가들은 하나의 건물에 밀집하되 개별적인 작업공간을 사용하면서, 다양한 문화예술계 정보를 서로 나누면서 안정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단점은 재계약을 통해 장기간 작업실을 임차하는 작가들도 상당수이기 때문에 지리적인 입지조건이 좋은 건물의 경우, 해당 작업실을 얻기 위해 대기 중인 작가들 간의 경쟁률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SPACE Studios Ltd.의 후원기관목록
* 자료출처: http://www.spacestudios.org.uk/


  한편, 작업실 임대기관들은 작가들의 공간임차로 얻는 수익과 함께 Art Council England를 비롯하여 British Council, National Housing Federation, Charity Bank 등 크고 작은 후원기관과 개인후원자들의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작업실 임대가 주된 운영방법이긴 하나, 단순히 작업실 임대사업에 머물지 않고 입주 작가들의 전시, 공연예술가들의 리허설 공간지원, 입주 작가들의 작업실 교체 제도, 이중 임차제도 등 작가들의 편의를 위한 다양한 지원형식을 갖추고 있다. 입주 작가를 위한 프로모션 차원에서 개개인의 정보를 디렉터리 형식으로 구성하여, 언제든지 작가와 관련된 간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사회제반 분야에서 부각되면서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ASC에서 운영하는 공연예술가를 위한 리허설 공간 대여프로그램
*자료출처: http://www.ascstudios.co.uk



SPACE Studios에서 구축한 입주 작가 디렉터리 서비스
* 자료출처: http://www.spacestudios.org.uk/


일반인들의 접근성과 지역민과의 융합을 위해 개발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자료출처: http://www.acme.org.uk, http://www.acava.org, http://www.ascstudios.co.uk




  이러한 시스템을 바라보는 사회 일각에서는 예술가를 ‘창의적인 노동자’(Creative Labours) 내지는 ‘창의적인 그룹’(Creative Class)으로 분류하면서 도시재생에 있어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슬로건에 따라 한 도시의 역사의 일부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건물을 예술가의 창작소로 재탄생시킨 움직임은 예산절감과 지역사회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지역사회의 자생적인 문화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도 바라볼 수 있겠다. 특히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한 개발업자들의 이해관계에 이력이 난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지역의 폐허로 자리했던 공간이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고급주택화(Gentrification)로 인해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기는 것 보다는 좀 더 온화한 지역개발의 한 방법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운영되는 전문적인 작업실 임대사업들이 펼쳐나가는 활동의 이면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체가 제공하는 작업실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가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다양한 국적을 지닌 작가들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런던의 도시 곳곳에서 작업 활동을 펼쳐나가면서, 결국 영국이란 나라에 대해 다양한 작가들이 즐비한 현대미술의 장으로 거듭나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고, 이것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면서 작가와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이 끊임없이 이뤄질 때,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 층이 탄탄해질 수 있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문화예술창작 구조를 확립하고 효율적인 지원시스템을 통해 지역의 작가 층을 두텁게 형성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문화경쟁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글 ‧ 사진=황정인 통신원(독립큐레이터)
2011. 8. 8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황정인 프로필>
 황정인(Jay Jungin Hwang).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재직했으며, ‘크리에이티브 마인드(2008)’, ‘그림 보는 법(2007)’, ‘명화의 재구성(2007)’, ‘여섯 개 방의 진실(2006)’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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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1/08/09 11:49:42 Posted at : 2011/08/03 15: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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