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문서
   
 
 
 
 
 
 
 

제목 : (7) 브랜드로 기억되는 문화예술공간
확대 축소 이메일 인쇄


황정인의 영국현대미술기행

(7) 브랜드로 기억되는 문화예술공간

  매주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이 되면, 습관처럼 주말 오전, 오후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줄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평소 런던의 지하철을 오가는 길목에서 접한 전시, 공연 포스터나 지인들의 추천, 온라인 문화예술정보 사이트는 주말의 계획을 알찬 문화콘텐츠로 꽉 채워줄 정보의 원천이다. 하지만 워낙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양질의 문화콘텐츠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식 쏟아져 나오는 런던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을 하나 짚어보라고 한다면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찾아보게 되는 문화공간들은 항상 순위권 안에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 우리는 그렇게 순위권을 지키고 있는 공간들이 매번 선택될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야말로 문화예술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를 사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그것이 소비되는 문화예술현장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지속적으로 이끄는 문화공간들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하나의 문화콘텐츠를 단일한 서비스상품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콘텐츠의  질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생산해내는 문화예술 공간이 지닌 브랜드와 그것의 가치, 이미지도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호에서는 양질의 콘텐츠가 소비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선택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문화예술 공간 고유의 ‘브랜드’ 메이킹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일반적인 정의로 볼 때, ‘브랜드’(brand)는 상품의 판매자가 경쟁자의 상품과 자사의 제품을 구별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나 기호, 디자인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상 속 경제활동 속에서 이러한 브랜드는 대상의 선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소비자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것이 지닌 가치를 경험함으로써 생산자인 기업을 브랜드 이미지로 기억하게 된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브랜드에 대한 믿음으로 직결되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습관적 소비를 유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소비자의 상표 충성도(brand loyalty)는 기업이 자사 제품에 브랜드를 부여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런던의 문화예술 공간 중에서도 타 문화기관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문화예술기관 고유의 브랜드를 확립한 Wellcome Collection을 소개하고자 한다.



 
Wellcome Collection의 1주년 기념동영상.
*자료출처:
http://www.youtube.com/user/WellcomeCollection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화이트큐브 갤러리, 화이트 채플갤러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에 비해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Wellcome  Collection은 런던 유스톤 역에 위치한 의학전문 복합문화공간이다. Wellcome Collection은 인류문명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의학 사료들을 총 망라하고 있는 ‘Wellcome Library’, 과거, 현재, 미래의 의학발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마련된 역사관 ‘Medicine Now’, Henry Wellcome(1853-1936)이 평생에 거쳐 수집한 의학 관련 집기들과 그림, 오브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상설전 ‘Medicine Man’, 그리고 수년간의 학술연구와 전문가들의 자문으로 이뤄지는 현대미술특별전,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의학 관련 전문정보를 알기 쉬운 시청각자료와 체험활동을 통해 풀어낸 워크숍, 심포지엄, 투어 프로그램 등의 각종 이벤트, 멤버십 서비스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회원전용 Club Room, 의학과 관련된 각종 예술, 과학, 인문 등의 서적을 소개하는 서점, 카페, 기프트 숍, 각종 학술 워크숍과 관련한 이벤트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컨퍼런스 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What's On In London’의 Youtube 채널에서 제작한 Wellcome Collection 소개영상
*자료출처:
http://www.youtube.com/user/WhatsOnInLondon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를 하자면, Wellcome Collection은 Wellcome Trust 재단의 설립자 Sir Henry Solomon Wellcome의 이름을 따서 만든 런던 중심가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이다. 약사이자 기업가, 자선가, 콜렉터였던 Henry Wellcome은 평소 의학과 경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토대로 1880년 대학동창인 Silas Burroughs와 함께 제약회사인 Burroughs Wellcome & Co.(참고로 이 회사는 과거 가루나 액체 상태로 판매되었던 약들과 달리 알약형태의 약을 처음으로 소개한 회사로서, 1884년 소개된 ‘Tabloid’는 최초의 알약형태의 약을 지칭하는 용어이자 이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를 설립한다. 공동설립자였던 Burroughs가 세상을 떠난 뒤, Henry Wellcome은 특유의 경영마인드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회사를 더욱 번창시키는데, 그 일환으로 그는 세계적인 수준의 의학연구소와 리서치 센터를 설립하고 수세기에 걸쳐 의학과 인간의 건강에 관련된 각종 의학 관련 오브제, 도구, 미술품,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열정을 바탕으로 설립된 Wellcome Trusts는 독립적인 자선재단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서 1936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인류의 건강, 의학에 관련된 각종 학술, 연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Wellcome Trust 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Wellcome Collection은 Henry Wellcome이 평생 동안 모은 소장품과 외부 소장가로부터 제공받은 의학 사료들을 보관, 전시,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복합문화공간을 지칭한다.

  필자가 Wellcome Collection에 주목하는 이유는 제약회사에서 출발한 재단의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인간과 의학의 관계를 기관 자체의 정체성으로 확립하고, 적극적인 브랜드 메이킹을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활동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연간 2회 개최되는 특별기획전은 인간의 신체, 정신건강, 일상의 의학을 아우르는 세부 주제들을 다루되, 큐레이터 단독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분야의 전문가들을 학예연구자문으로 초빙하여 전시의 깊이를 더한다는 측면에서 유독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2010년 11월11일부터 올해 2월 27일까지 진행된 <High Society>는 마약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으로서,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마약의 기원과 발전, 그것을 둘러싼 역사, 문화사를 200여 년 전 고문헌의 삽화에서부터 현재의 회화, 영상,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진정한 학제간의 교류의 장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를 기획한 Mike Jay, Caroline Fisher, Emily Sargent로 구성되어 있는 큐레이터 그룹과 더불어 마약과 인간의 신경정신분야를 다루는 의사, 영문학자, 사학자들로 이뤄진 자문위원단이 전시자문 뿐만 아니라 전시와 2일간의 심포지엄을 통해 마약의 문화사, 의학사, 문학사를 심도 있게 다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시장에 있는 전시물들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제작년도가 약 300~500년이라는 시간의 스펙트럼을 넘다든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Wellcome Collection은 자체 소장품 외에도 그러한 주제의식을 담은 자료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갤러리, 미술관, 개인 소장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한 협업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전시의 양과 질적인 측면을 효과적으로 상승시켜 보여줬다. 오랜 연구를 통해 입증된 과거의 사료들을 시작으로 현대에 와서는 마약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재해석되고 인식될 수 있는지, 현대미술작가들이 작품에서 어떻게 다뤄내고 있는지를 전문가들의 방대한 학술교류와 고증,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학예연구를 실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학예연구과정에서 전시와 함께 참고할 서적을 엄선하여 보여줌으로써 보다 많은 정보를 원하는 관객들의 지적인 목마름을 채워주는 것도 작지만 눈 여겨 볼 지점이다.



2010년 하반기 특별기획전 <High Society>의 전시 트레일러
*자료출처:
http://www.youtube.com/user/WellcomeCollection


  아울러 전시와 관련된 모든 행사와 프로그램 매니지먼트, 효과적인 동선구성을 위한 전시 디자인과 설계, 박물관의 자료와 현대미술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상황에서 각각의 작품들을 최상의 상태로 보여줄 수 있는 조명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시의 내용은 물론 전시의 시각적 효과를 위한 모든 요소들이 전시의 질을 한층 높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은 특정 주제에 대한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각종 시청각자료와 동선구성을 통해 이 전시가 무엇에 대한 전시인지, 그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의 사실적 정보를 한눈에 개관할 수 있다.

  한편 Wellcome Collection에서는 전시기간 중 전시의 주제와 관련된 내 ‧ 외부 행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전시에 대한 담론과 세간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별기획전 <Dirt>의 예를 들어보자. <Dirt>는 Wellcome Collection의 2011년 상반기 특별기획전으로서, 먼지와 더러움이 인간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의학과 질병, 생활사, 도자기 역사, 현대미술사, 병원의 역사, 청결을 위해 발명된 기기들의 발전사 등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앞서 소개한 <High Society>처럼 학제간의 교류를 통한 학예연구의 다각화뿐만 아니라, 전시와 관련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전시 매니지먼트 팀은 다양한 이벤트를 개발한다. 단순히 전시관련 교육프로그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시관객 개발과 담론형성을 위해 전시 내 ‧ 외부적으로 전시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소개한다. 참여 작가의 전시 퍼포먼스와 전시투어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전시주제와 관련된 영화를 선정하여 보여주는 특별상영회, 단편영화 페스티벌, 정부관계부처(환경청, 보건복지부 등) 담당 공무원의 현행 정책소개, 현장답사 프로그램, 퀴즈 이벤트, 온라인 인터렉티브 게임,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동 등의 다양한 행사들을 일정별로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전시장 안에서의 활동을 다양한 외부활동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채널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다. 이 모든 활동들은 ‘Dirt’라는 전시의 메인 주제로 수렴되면서 자연스럽게 전시와 관련된 담론형성을 가능하게 이끄는  것이다.



2011년 상반기 특별기획전 <Dirt>의 전시 트레일러
*자료출처:
http://www.youtube.com/user/WellcomeCollection


  이처럼 Wellcome Collection은 문화예술과 의학 분야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학예연구, 주제를 잘 드러내주는 각종 문헌과 작품, 흥미로운 동선계획, 이 모든 과정이 집대성되어 있는 인쇄물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선행되었을 방대한 연구와 자료의 수집, 관계자들의 협업이 모두 한 박자가 된 전시를 매번 보여주고 있다. 특별기획전을 통해 문화공간의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면서, 문화사와 의학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아카이브, 주제를 특화시켜 수집한 소장품 상설전, 다양한 관객층과 그들의 기호를 고려한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문화공간의 브랜드를 형성해 나간다.

  수십 년 전 Wellcome Trust의 설립자 Henry Wellcome의 뜻에 따라 설립된 의학연구소와 리서치센터가 지닌 학술적 가치는 현대에 와서 Wellcome Collection의 학제간의 교류와 학예연구 활동으로 전승되면서 그 가치가 심화, 확장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인 호기심과 감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하는 관객들은 그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토대로 Wellcome Collection라는 브랜드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다채로운 문화콘텐츠를 눈여겨보고, 그것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소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로열티를 높여가는 것이다. 결국 문화공간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문화 공간 스스로 나름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새롭게 보여주는 노력을 통해 브랜드를 확립해 나가야 하며, 그것만이 문화콘텐츠의 바다 속을 헤매는 관객들이 길을 잃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런던|글 ‧ 사진=황정인 통신원(독립큐레이터)
2011. 7. 11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황정인 프로필>
 황정인(Jay Jungin Hwang).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재직했으며, ‘크리에이티브 마인드(2008)’, ‘그림 보는 법(2007)’, ‘명화의 재구성(2007)’, ‘여섯 개 방의 진실(2006)’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진행했다.


확대 축소 이메일 인쇄
Modified at : 2011/07/07 11:27:18 Posted at : 2011/07/07 11:26:10
목록   최신목록 윗글   |   아랫글
위 글은 댓글거부이거나 댓글작성, 조회가 불가한 상태입니다.

동영상  QR코드  
제목작성일뉴스레터 호수
(12) 미술관 자료에 가치를 더하는 일, 리서치와 아카이브 2011/12/07 129 호
(11) 대안공간 재발견, 영국의 ‘Pop-up’ 문화 2011/11/09 127 호
(10) 도시를 가로지르는 예술적 감성, Art on the U.. 2011/10/05 125 호
(9) 동 시대 미술의 새싹과 양분이 만나는 곳, 졸업전 2011/09/06 123 호
(8) 문화경쟁력 확보를 위한 건강한 투자, 런던의 활발한 작업.. 2011/08/03 121 호
(7) 브랜드로 기억되는 문화예술공간 2011/07/07 119 호
(6) 매월 첫째 주, 런던의 밤은 예술의 향기로 가득하다 2011/06/08 117 호
(5) 시민의 참여, 시민의 선택, 시민의 예술, 공공미술 2011/05/05 115 호
(4)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 소장품 2011/04/06 113 호
(3) 놀이를 통해 배우는 작은 실천, 기부 2011/03/10 111 호
(2) 멤버십, 서비스 그 이상의 것 2011/02/10 109 호
(1) 관객의, 관객에 의한, 관객을 위한 미디어 2011/01/06 107 호
목록   최신목록
1
 
 
  많이본기사
 
해외작가 (104) 리암 길릭...
<가볼만한 전시>더 보이...
<리포트>2017 꿈다락 토...
<프리즘>#셀피(selfie)- ...
<화보>‘5월 문화가 있는 ...
무제 문서
 
home I login I join us I sitemap I contact us I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Copyright(c)2008. Art Museum issued by The Korean Art Museum Association. All rights reserved.
(121-898)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215, 301호(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98-24 재서빌딩 301호)

TEL : 02-325-7732 I FAX : 02-3141-7739 I e-mail :e-magazin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