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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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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인의 영국현대미술기행


(4)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 소장품


  전시기획과 더불어 미술관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소장품 수집과 관리가 아닐까? 비영리로 운영되는 미술관은 소장품을 통해 시대를 기억하고, 전시를 통해 시대를 이야기한다. 미술관을 정식으로 관할 소재지에 등록하는 절차에 있어서도 공간, 인력구성과 함께 소장품은 미술관의 중요 자료로서의 역할을 하며, 소장품 수집과 전시를 통해 미술관은 사회의 공공기재로서 문화시설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 또한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의 회원미술관 목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미술관은 소장품 수집을 통해 기관의 브랜드를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마다 새로운 전시기획운영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미술관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1차적 문화콘텐츠인 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한 2차, 3차적 문화콘텐츠 개발에 대해서는 그동안 관심이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장품 콘텐츠를 활용한 가장 일반적인 형태를 크게 살펴보면,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상설전 개최, 소장품 카탈로그 발간을 통한 미술관 아카이브 구축 혹은 웹페이지를 통한 미술관 컬렉션 소개, 소장품의 특징을 활용한 아트상품 개발에 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관의 성격을 정의내리고,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을 증언하는 중요한 사료로서의 소장품. 오늘은 소장품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을 보여주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창의적 협업을 통한 소장품의 재발견
  소장품의 특성상 그것을 활용한 전시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2차적 문화콘텐츠로 여겨질 수 있다. 상설전을 위한 별도의 전시공간이 존재하거나, 상설전 위주로 전시를 진행하는 미술관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전시의 비수기를 이용해 소장품 전시를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술관의 운영난 속에서도 사회적 공공기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동 시대의 유산을 어렵게 수집한 만큼, 이를 더욱 의미있게 만드는 효과적인 전시기획은 불가능한 것인가?

영국 리버풀의 Albert Dock에 위치한 TATE Liverpool 전경
*개별 사진을 클릭하면 이미지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리버풀비엔날레 관람을 위해 테이트 리버풀로 향했던 필자는 때마침 비엔날레와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 특별전 <This is Sculpture>를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처음에는 전시의 제목처럼 현대조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전시일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섰지만, 그것이 테이트의 소장품만으로 기획된 전시라는 것을 눈치 채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유는 국내에서 접했던 일반적인 소장품 전시와 달리 소장품의 선별, 전시구성, 디스플레이에 있어서도 특별기획전 못지않은 기획력이 돋보인 전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로펌 DLA Piper의 후원으로 이뤄진 <DLA Piper Series: This is Sculpture>는 테이트의 근현대조각 소장품을 중심의 소장품 기획전으로서, 테이트 리버풀의 큐레이터와 동 시대를 이끄는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의 공동협업으로 기획된 대규모 특별기획전이다. 전시는 크게 ‘Sculpture: The Physical World’, ‘Sculpture Remixed’, ‘The Sculpture of Language’ 등 세 부분으로 나뉘는 데, 각각의 공간마다 근현대 조각을 새롭게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한껏 느껴볼 수 있는 자리였다.

  먼저 ‘Sculpture: The Physical World’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Michael Craig-Martin은 자신의 대표작이기도 한 벽면 드로잉을 이 전시를 위해 특별히 고안하여 전시디스플레이 방법으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칫 지루한 선형적인 디스플레이에 그칠 법한 조각 작품들에 서로 다른 공간의 분위기를 부여하면서 색다른 감상의 묘미를 제공했다. 또한 영국현대미술기행의 첫 번째 칼럼(107호 ‘관객의, 관객에 의한, 관객을 위한 미디어’)에서도 간단히 소개했듯이, 전시연출의 일환으로 영화감독 Mike Figgis는 미술관 인근의 학교와 기업을 방문하여 현대조각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전시기간 중 해당 작품의 설명문 옆에 설치된 LCD모니터를 통해 상영했다.


전시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를 담은 <DLA Piper Series: This is Sculpture at Tate Liverpool>. 동영상을 통해 전시전경을 볼 수 있으며, 각 공간별 기획의도를 들을 수 있다.  
                                                                *자료출처(유투브
http://youtu.be/mUJ02LY7j9k)


   이어서 ‘Sculpture Remixed’에서는 디자이너 Wayne Hemingway와 그의 아들 Jack Hemingway가 19세기 신고전주의 조각에서 현대조각에 이르기까지 인체를 주제로 한 조각들을 중심으로 선정하고, 조각을 통해 드러나는 인체의 역동성, 움직임을 테마로 한 새로운 방식의 감상법을 제안했다. 이들은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입구에 비치된 무선 헤드폰을 착용하고 작품을 감상하도록 유도했는데, 무선 헤드폰을 장착하면 동 시대 가장 유명한 DJ들이 Remix한 댄스뮤직이 흘러나온다. 각각의 헤드폰마다 두 개의 채널로 방송되는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요일별로 각기 다른 DJ들이 서로 다른 멋진 리믹스 버전의 음악을 선보이도록 기획한 것이다.

  문제는 전시장 내부. 전시장에 들어서면 진한 보라색으로 칠해진 전시벽면을 배경으로 근현대 조각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리석, 브론즈를 주재료로 한 신고전주의 조각에서부터,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인체가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자유롭게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조명디자이너 Kathrine Sandys는 전시장 중앙에 조명을 활용한 댄스플로어를 마련했는데, 디스코 음악을 배경으로 조각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5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감상의 즐거움과 함께 마음껏 춤출 수 있다.

  또한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시장 천정에 커다란 미러볼을 설치하여, 전시장 전체가 미러볼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움직임에 의해 역동성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상황이다. 부모 손을 잡고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은 인체조각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를 흉내 내보고 흥에 겨워 춤을 춰가면서 작품을 보고, 느끼고, 기억한다. 기존의 소장품 전시와 작품감상법에 대해 가졌던 필자의 생각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무선헤드폰과 헤드폰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음악목록. 요일별로 2곡씩 서로 다른 DJ가 편곡한 음악이 헤드폰 채널을 통해 흘러나온다. 

*개별 사진을 클릭하면 이미지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The Sculpture of Language’에서 시인 Laureate Carol Ann Duffy는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어가 지닌 속성을 조각의 형식으로 차용한 작품들을 선택, 전시하고 전시와 함께 <Poetry>이라는 제목의 시를 창작하여 발표했으며, 이와 더불어 관객과 함께 시를 창작해나가는 설치작업도 선보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전시의 내용이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소장품들을 전시함에 있어서, 작품을 연구하는 큐레이터들과 동 시대의 문화예술가가 함께 협업하여 소장품을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가기 위해 그들이 시도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러한 창의적 사고의 원동력은 한 시대의 미술작품을 수집하는 미술관이 그것을 수집하고, 관리, 기록하는데 그치기 않고, 그것을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을 이해하고, 그들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을 연구하여 기존의 소장품 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그들의 노력에서 비롯된다.

  소장품의 구입경로부터 역사적인 의미, 또 작품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큐레이터들의 학술적 연구바탕 위에 다양한 감각으로 무장한 문화예술계의 전문가들이 펼치는 개성 넘치는 전시연출력과 깊이 있는 재해석이 가미되면서 기존의 단순나열식에 그쳤던 평면적 형태의 소장품 전시는 무궁무진한 진화가능성을 지닌 입체적 전시로 거듭나는 것이다.


상상력이 가득한 교실, 친구처럼 만나는 소장품
  소장품은 수집과 보존, 관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효과적으로 재조명되었을 때 가장 큰 가치를 발휘하는 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소장품이 다시 빛을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미술관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 지역 학교와  연계한 전시프로그램은 보다 의미있는 전시방법이 아닐 수 없다. <This is Sculpture> 전시를 준비하면서 테이트 리버풀은 인근 학교로 직접 소장품을 운반, 전시하여 아이들에게 현대미술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본 Dan Flavin의 조각 <Untitled>는 아이들의 풍부한 상상력만큼이나 다양하고 유쾌한 해석들을 이끌어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각자 예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신감 있게 얘기하거나, 장난 섞인 말투로 작품소재로 쓰인 형광등과 교실 천장위의 형광등을 비교하면서 작가의 작품과 일상의 사물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모르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프로그램의 모든 결과물은 앞서 언급한 Mike Figgis의 손을 거쳐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제작되어 전시기간 중 상영될 뿐만 아니라, 테이트 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자료화된다.

  또한 교육기관으로의 접근뿐만 아니라, 지역 중소기업을 방문하여 현대조각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을 생생한 인터뷰로 담은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실제로 테이트 리버풀의 스태프들과 Mike Figgis감독은 리버풀의 대표적인 DIY 용품 회사인 Rapid Hardware를 방문하여, Carl Andre의 작품 <144 Magnesium Square>을 현장에서 설치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회사 직원들의 다양한 해석들을 영상에 담았다.


TATE Liverpool의 소장품 특별전 <This is Sculpture>에 앞서, 전시에 소개될 Dan Flavin의 작품 <Untitled>를 리버풀 시내의 한 학교 교실에 하루 동안 임시로 설치하고, 작품에 대한 학생들의 여러 생각들을 인터뷰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
<3 Minute Wonder: Dan Flavin "Untitled">(2010)
*자료출처
http://channel.tate.org.uk/channel#media:/media/69695302001&list:/channel/playlists/45927933001&context:/channel/playlists

*개별 사진을 클릭하면 이미지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찾아가는 전시의 형태를 보면 평범한 교실 한편에 작품이 설치될 수 있는 임시 파티션을 설치하고, 작품을 전시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많은 수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는 작업을 선정, 전시함으로써 단 하루의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작품과 그것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작품을 접한 아이들마다 각자 경험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익숙한 경험으로 자리하게 되면, 적어도 미래의 문화소비주체인 아이들이 현대미술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나 보다 친근하게 작품을 접하고 미술관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작은 힘이 되는 것이다.

 <사진 19-34> 리버풀의 대표적인 DIY 용품 회사인 Rapid Hardware에 전시된 Carl Andre의 작품 <144 Magnesium Square>와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담은 <3 Minute Wonder: Carl Andre, “144 Magnesium Square”>(2010). Mike Figgis 감독이 직접 연출을 담당했다.
*자료출처
http://channel.tate.org.uk/channel#media:/media/69695304001&context:/channel/playlists

*개별 사진을 클릭하면 이미지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문화콘텐츠의 개발, 그 해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소장품을 소재로 한 특별기획전, 찾아가는 미술관 외에도 이전의 칼럼(109호, 111호)에서 소개한 미술관 멤버십, 후원을 통한 소장품 구입의 투명화, 소장품 유지 및 관리를 떠올려보자. 결국 소장품 구입, 유지, 관리 및 연구, 전시기획, 회원관리, 교육프로그램 등 미술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든 기능들의 핵심에는 미술관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자 시대와 사회의 유산인 소장품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박물관, 미술관도 결국엔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의 전시를 통해 지금의 명성을 얻고, 이를 활용한 공공기재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을 향한 끊임없는 목마름은 미술관 수장고에 잠자고 있는 보석 같은 작품들을 다시 꺼내어 보고, 연구하고, 새롭게 재조명하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런던|글 ‧ 사진=황정인 통신원(독립큐레이터)
2011. 4. 11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황정인 프로필>
  황정인(Jay Jungin Hwang).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재직했으며, ‘크리에이티브 마인드(2008)’, ‘그림 보는 법(2007)’, ‘명화의 재구성(2007)’, ‘여섯 개 방의 진실(2006)’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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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1/04/06 17:10:12 Posted at : 2011/04/06 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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