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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 놀이를 통해 배우는 작은 실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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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인의 영국현대미술기행

(3) 놀이를 통해 배우는 작은 실천, 기부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미술관은 분주하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미술관의 특성상, 연말이 되면 그동안 미술관에 사랑을 베풀어 준 후원자와 회원들에게 보답하는 작은 행사를 마련하고, 연시에는 다음 한 해 동안 운영될 전시기획예산을 편성하느라 전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기부와 후원을 통해 연말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후원의 밤’ 형식을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후자의 경우 정부나 지자체의 문화예술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한 기획서 작성 등의 문서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이 둘은 비영리 미술관이 관객들에게 양질의 전시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대표적인 자금 확보 방법이기도 하다. 관객의 입장료 수익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미술관에서는 이러한 연말연시의 분주함과 노력이 한해의 미술관 살림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성을 지닌다.

  하지만 기부와 후원으로 모아지는 운영자금은 그 규모나 지속성 측면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기부와 후원문화의 부재도 이유이겠지만, 미술관에서 기부와 후원을 이끌어 내는 기존의 방법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수동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외부로부터 기부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보다 적극적인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에서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영국현대미술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기부문화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국내미술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부의 방식을 자기반성적인 자세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양질의 기부문화 형성을 위해 국내미술관이 갖춰야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놀이로 즐기는 기부
  테이트TATE 터빈홀로 이어지는 입구에 들어서니 ‘쨍그랑, 쨍그랑’ 저금통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 소리의 원천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니 알록달록한 색이 입혀져 있는 아크릴 구조물과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전소리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형태의 기부함을 상상했던 필자에겐,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어져 있는 커다란 아크릴 구조물이 퍽이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테이트TATE 터빈홀로 향하는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기부함. 부모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아이들이 재미난 형태의 기부함을 발견하고는 또래 친구들과 동전 넣기 게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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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그 형태를 보면 어른의 키를 조금 넘는 높이에 두툼한 두께를 한 직사각형 모양의 문처럼 생겼는데, 투명한 아크릴 재질로 만들어 진 것이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안을 보면 색색의 젤리처럼 생긴 조그만 형태들이 씨앗처럼 박혀있는데, 부드러운 콩 모양 형태의 곡선을 따라 다양한 액수의 동전들이 아슬아슬하게 돌탑마냥 쌓여있다. 보아하니 투명한 문 모양의 구조물 위쪽에 구멍이 있어서, 그 안으로 동전을 넣으면 조그만 형태들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던 동전이 방향을 바꿔가며 서로 다른 지점에 도달하게 되어 있는 구조다.

  마치 분수대에 소원을 빌고 원하는 위치에 동전을 던지듯,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색색의 형태들 위에 저마다 동전을 넣어가며 원하는 위치에 동전이 떨어지는 것을 신이 나서 바라본다. 때론 자신이 원하는 색깔의 구조물에 동전이 도달하지 않으면 부모의 도움으로 수차례 시도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 마냥 기부함 근처에서 발길을 떼지 못한다. 게임을 즐기듯 동전을 넣는 것 외에도 투명한 상자 안에 동전이 떨어져 쌓이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일반적인 기부함의 생김새와 달리 투명한 재질에 알록달록 재미난 형태의 오브제로 꾸며진 기부함은 시각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그것이 설치된 공간 자체의 분위기에도 역동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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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기부함 형태의 독특함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미술관이 기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수혜기관이 관객에게 접근하는 방식의 문제다. 놀이는 그 형태의 단순함과 복잡함을 떠나 근본적으로 유희적 성향을 지니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체득한 감성은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그 시절 매순간에 느꼈던 즐거운 기억과 함께 따뜻한 추억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찾은 전시장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 기부행위는 놀이처럼 다가와 반복된 시간을 거쳐 몸에 밴 습관이 되면, 자연스레 생활의 일부가 되어 문화로 자리하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관객들이 오가는 전시장 입구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테이트TATE의 기부함은 놀이를 통해 기부가 즐거움이 되고, 문화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가장 쉽고 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기부함들이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니터를 배치하여 기부 캠페인 영상을 상영하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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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겉으로 보기에 투명한 아크릴 구조로 되어 있는 기부함은 동전 넣기 게임으로 묘한 승부욕을 자극하는 요소인양 비춰질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쌓여가는 동전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는 ‘기부는 투명해야 한다.’는 사실 원칙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테이트TATE와 함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자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대영박물관의 기부함 역시 미끄럼틀처럼 동전이 흘러들어가 쌓이는 원리로 되어 있으며, 어떠한 방향에서 바라봐도 기부금이 쌓여있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커다란 원형 아크릴 구조로 제작되어 있다. 테이트TATE에 비해 대영박물관에 비치된 기부함은 투명한 아크릴 재질을 유지하되 별다른 특징 없는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배치된 숫자나 위치에 있어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단순히 전시장 입구뿐만 아니라 관객의 동선이 미치는 구석구석에 위치하여 오고가는 관객들이 수시로 동전을 꺼내 넣을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다. 눈길 닿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기부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방문하고 있는 공간이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공간임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식시킬 수 있는 시각적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관객이 오고가는 입구에 배치되어 있는 독특한 형태의 기부함을 통해 전시 관람의 시작과 끝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지점이다.



 대영박물관 내 ‧ 외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기부함. 아트 숍, 티켓박스, 복도, 전시장 출입구 곳곳에 기부함이 배치되어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자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임을 고려하여 세계 각국의 언어로 기부 메시지를 표기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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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투명한 기부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테이트TATE의 디렉터 Nicholas Serota는 멤버십 가입 회원들에게 일제히 메일을 보내 5일간 진행될 크리스마스기념 자선행사에 참여하기를 권했다. 메일의 내용 중에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기부금의 액수를 세 가지 카테고리로 지정하여 각각의 금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일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과 이러한 기부행사를 테이트TATE가 직접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기관에서 주관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먼저 기부의 쓰임을 명시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국내 미술관의 기부문화를 보면, 기부의 쓰임을 명시하는 문장들이 추상적인 개념이나 미사여구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Nicholas Serota가 회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는 개개의 금액이 전시공간을 어떻게 탈바꿈시킬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기부행사동안 실시되는 기부는 기부금액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10파운드(한화 약 2만원)를 기부했을 경우, 아이들이 1주일동안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사용되는 펜과 종이를 구입하는데 쓰이고, 30파운드(한화 약 6만원)의 기부금은 미술관의 예술체험 워크 숍을 실시하기 위한 보조금으로 쓰일 예정이며, 마지막으로 60파운드(한화 약 12만원)는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소장품의 보존과 수복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특히 그가 보낸 메일의 첫머리는 어떤 미사여구보다 기부의 의미를 돋보이게 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인즉슨 다음과 같다. “기부가 시작되는 12월6일 아침 10시, 여러분은 테이트TATE의 컨서베이터(conservator)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John S. Sargent의 그림 액자를 복원하는 것을 돕거나, 전시장을 찾은 어린 학생들이 마티스의 그림이 지닌 가치를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이 미술관을 위해 내미는 기부의 손길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내는지 제시함으로써, 작은 실천으로서 기부가 어떻게 문화공간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지를 마음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테이트TATE의 디렉터 Nicholas Serota가 회원들에게 보낸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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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를 하나의 이벤트로 만들고, 이것을 제3의 기관에서 주관하는 측면도 흥미롭다. 지난 2010년 연말에 열린 테이트TATE의 크리스마스 기부행사의 경우 The Big Give(http://www.thebiggive.org.uk)라는 공식협력기관을 통해 진행된 기부 프로그램이다. 참고로 The Big Give는 현재 7천744개의 기부행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기부규모에 상관없이 각각의 행사마다 웹페이지를 구성, 지원함으로써 후원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 누구나가 기부의 목표액과 기간, 취지, 배경, 목표, 쓰임, 의의 등 프로그램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후원 주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온라인 지불시스템을 갖추고,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개요를 이해하기 쉬운 문장과 적절한 시각적 자료로 설명하고 있는 점도 The Big Give의 특징 중 하나다. 한국의 경우 한국메세나협의회에서 운영하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 프로그램에서 기업과 문화예술기관의 파트너십을 통해 기부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제3자에 의한 기부 활성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지속적인 지원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해 이와 같은 기관 대 기관의 기부사례도 중요하지만, 수혜기관의 새로운 기부행사를 수시로 업데이트하면서 개인 기부자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있는 The Big Give와 테이트TATE의 파트너십 구축방식도 참고할 만한 사항이다.


The Big Give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테이트TATE의 기부 프로그램 개요와 기부금을 지불하는 페이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시각자료도 제시하여 보는 사람이 쉽게 기부의 내용과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 자료출처: http://www.thebiggive.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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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이 지닌 가장 큰 공통점은 수혜기관이 기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지점에서부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기부문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부프로그램들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눈 닿는 모든 곳에서 기부가 시작될 수 있으며, 기부도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도우며, 다양한 단위의 기부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부는 그 규모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임을 일깨운다. 또한 정보화시스템과 데이터베이스를 적극 활용하여 누구나 손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리는 이 모든 일들이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슬처럼 맑고 투명하게 이뤄지는 기부, 행하는 길이 쉽고 명확하게 제시되는 기부, 즐거움을 동반한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행해지는 기부야 말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건강한 기부문화를 싹틔우는 작은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런던|글 ‧ 사진=황정인 통신원(독립큐레이터)
2011. 3. 14 ⓒArt Museum
<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황정인 프로필>
  황정인(Jay Jungin Hwang).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재직했으며, ‘크리에이티브 마인드(2008)’, ‘그림 보는 법(2007)’, ‘명화의 재구성(2007)’, ‘여섯 개 방의 진실(2006)’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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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d at : 2011/03/10 16:02:33 Posted at : 2011/03/10 12: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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